누구나 가슴 한구석엔 크고 작은 키키가… “핑크빛 미래 대신 터벅터벅 나아갈 힘을”|동아일보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25일까지 서울 CKL스테이지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주인공 키키(가운데)가 마치 “정서적 피부가 모두 벗겨진” 듯한 경계성 인격장애를 치료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공연제작소 작작 제공

공허한 마음이 두려워 불 꺼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오래도록 밤을 헤맨 적 있는가. 행여 미움 받을까 작은 실수에도 전전긍긍한 적은? 비슷한 마음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는 크고 작은 ‘키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초연된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성격장애를 앓는 주인공 키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현대인에게 흔한 만성 불안, 불안정한 대인 관계 등을 증상으로 하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소재로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으로 뮤지컬 ‘실비아, 살다’를 만든 공연제작소 작작이 제작했다.

작품은 키키가 성격장애를 치료하려 애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연인에게 집착하며, 자해를 서슴지 않던 키키는 상담사 에단을 만나며 자신의 병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키키 역은 배우 이수정과 이휘종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엄마에서 직장 상사로, 스테이플러로 쉴 새 없이 변하는 1인 다역 연기를 좇는 재미가 있다. 매 공연마다 키키를 포함한 6명의 배우가 등장해 총 30여 개의 배역을 맡는다. 배우 남경주, 김수정 등이 출연한다. 배역 간 관계를 명확하게 연출해 많은 캐릭터가 혼란스럽기보단 극을 익살맞게 푸는 장치가 됐다.

귀에 꽂히는 킬러 넘버는 부족하지만 키키의 상황과 심리에 꼭 맞게 작곡된 넘버들이 마음을 울린다. 키키의 내면이 혼돈에 휩싸여 폭주할 땐 하드록이, 자신의 성격장애를 인정조차 않는 부모와 말싸움을 벌일 땐 속사포 랩이 주인공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키키가 연인과의 불화 뒤 자해하는 대신 고통을 잊고자 차가운 얼음을 양손에 움켜쥔 채 부르는 넘버 ‘유일한 탈출구’는 객석에도 용기를 안겨준다.

장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흔히 취하는 핑크빛 미래를 손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키키의 역경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극이 다소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희망차다.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어도 더는 스스로를 역겨워하지 않고 노력하는 키키를 보며 관객은 “터벅터벅 느린 걸음으로 나아갈” 힘을 두 손에 쥐게 될 것이다.

25일까지. 전석 6만6000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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